읽다보니 공감이 되서 슬프다..
링크: http://m.pikicast.com/pikicast-new-web/collection/view?colId=18193 서른이 넘어 만나게 되는 30대 남자는 확실히 여자가 스무살 초반에 만났던 남자와 다르다. 남자가 서른이 넘으면 여유로워진다는 인상을 받는다. 더 이상 20대 초반에 용돈 받아 데이트하러 나왔던 학생처럼 일, 이만원에 초조해 하지도 않고, 사람도 좀 더 많이 만나봐서 인지 성급하지 않는다. 더불어 튕기면 바로 튕겨져 나간다. "먹을래?" "아니" "응" (더 이상 권하지 않음. 끝)" 이런 것처럼, 초반에 호감이 있어 보였어도 여자가 조금 튕기는 듯한 인상을 받으면 끝이다. 한국인의 미덕 삼세번 같은 것이 없다. 싫다고 하면 나이 먹어 귀찮게 또 들이대기도 그렇고, 이제는 잃을 것이 없던 이십대의 열혈청년이 아니라 잃을 지위와 명성, 약간의 사회적 지위라는 것이 있어 막 표현을 하기 곤란한 것인지 적극적이지가 않다. 그래서 여자 입장에서는 애가 탄다. 좋아하는 것 같은데, 남자가 적극적으로 대쉬하지 않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정말로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한다. 동생들이 제게 "괜찮은 사람이 있는데, 그 쪽도 마음이 없어 보이지는 않거든. 연락하면 답도 하고, 만나기도 하고.. 그렇다고 막 적극적이지는 않고.. 좋으면 좋다고 분명히 해주면 좋은데 왜 그러는거지?" 라고 물어보는데, 보통 여자들은 생각하기를, "나이가 먹다보면 상처받은 경험도 늘어서..다시 사랑하는 것에 소심해져서 그렇겠지..." 라거나, "나이가 있으니 조심성이 커지는 거겠지.."라고... 그러나 가만히 보니.. 이건 여자가 이렇게 해석하고 싶은 바람이고, 30대 남자가 연애에 적극적이지 않은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30대 남자 싱글들의 경우, 연애질을 안하면 경제적 여유와 시간이 는다. 어릴적에는 게임 아이템 하나 살 때도 만원이 너무 큰 돈이라 주저했는데, 지금은 주저없이 결제해버린다. 그래서 게임을 해도 재미나고, 취미생활(야구,스쿠버다이빙등)을 해도 입문부터 장비를 전부 갖춰가면서 시작할 수 있다. 연애 안하고, 술 담배 안하고, 딱히 돈 쓸 사람도 없으니 지름신이 좀 강림한다고 해도 자신을 위해 이 정도쯤은 즐겨도 된다는 생각이 들기에, 즐겁다고들 한다. 이렇게 되고 보면, 진심으로 연애가 귀찮기도 하단다. 나이 한 살 두 살 먹으니 연애를 하긴 해야겠는데, 이제 와서 연애하려고 여자 비위 맞춰주고 어찌될지 모를 일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느니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이익이라는 실질적인 손익계산이 생긴다. 그리고 30대 남자는 여자에 대해서 빨리 파악 한다. 한 해 두 해 더 살면서 한 명 두 명 더 만나다보니, 그만큼 노하우가 축적이 되어서, "대충 저런 스타일은 이런 스타일 일 것이다."라는 단적인 분류가 빨라지는 거다. 그래서 어지간해서 쉽게 사람에게 완전히 빠지지를 않는다. "정말 미인이시네요. 아름다우십니다." "진짜 매력적이에요". 인상이 정말 좋으세요." 같은 말은 20대보다 더 잘하게 되었지만, 그게 다에요. 그 이면에는 뇌회전을 빨리 하면서, 이 여자에 대해 빠른 스캐닝과 유형 분류가 끝난다. 얼굴, 몸매, 말하는 것 보니 좀 계산적인 스타일, 착한 것 같기는 한데 재미없는 스타일, 답답한 스타일, 나이 먹고 철없어 보이는 스타일 등등 어떤 스타일인지 등을 바로 알아채 버린다. 남자가 여자를 거의 못 만나봤을 때는.. 여자라서가 아니라 " 그 여자" 였기에 특별하다고 생각하며 빠져든다. 여자들이 원래 그런지, 그 여자만 특별한 것인지 구분이 안되었기에, 마냥 더 특별해 보였던 것이다. 마치 처음 아이폰이 나왔을 때 그 자체가 좋기도 했지만, 이것이 스마트폰이면 다 되는 기능인지, 아이폰에서만 되는 기능인지 잘 모르겠으니 마냥 더 좋아보이는 면도 컸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폰이든 갤러시든 일정 수준 이상으로 다 좋기 때문에, 성능적인 차이라기 보다는 개인의 취향적인 면이 더 커져 버렸다. 특정 기기가 아니라 어떤 폰이든 간에 스마트폰이면 이메일, 메신저, 어플 등등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다 알아버렸으니까.. 마찬가지로 30대 남자는 이제 그 여자만 그런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여자도 어느 정도 비슷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어지간한 그 여자'만'의 특별함이 없으면 시큰둥해버리는.. 어찌 보면 진정으로 눈이 높아져 있는 것이다. 단순히 조건이나 외모 등이 아니라, 딱 봤을 때 괜찮은 여자로 보이고 특별하다 느껴질 만큼 매력적이지 않으면, 남자가 애써 적극적으로 그 여자를 잡아야 될 동기부여가 안되는 것이다.. 여자 입장에서 해석하자면,, 남자들이 20대에 여자에게 상처를 많이 받아 30대가 되면 또 상처받을까봐..여자에게 쉽사리 대쉬하지 못하는거라고.." 남자들 참 바보같아. 겁쟁이야."라고 하고싶은데.. 현실은 겁쟁이여서가 아니라, 30대 남자가 움직이고 싶을만큼 여자가 매력적이지 않아서 인 것이다.. 즉, 20대처럼 외모만 보지도 않고 내가 하는 얘기에 반응 잘해주고 얘기도 잘 통하고 함께 뭘해도 즐거운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는 것일뿐. 굳이 상대가 반응 안보이는데 몇 일동안 집앞에 기다리고 이벤트하고 그러할 마음이 없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30대가 되면 남자들도 단순히 예쁜 여자보다는 내 얘기에 리액션 잘해주고 공감대 형성 잘되고, 또 여자쪽에서도 자신을 좋아한다는 느낌이 팍팍 들게 표현해 주는 여자에게 마음이 가는 것이다. 간보거나 어장관리하려고 한다거나 밀고 당기려고 하는 여자들.. 또 20대 초반에 워낙 떠받들여져서 그 잔재가 남아있는 여자들.. 이제 남자들 눈에 훤히 다 보이고, 그런거 맞춰 주기엔 바쁘기도 바쁘고 무엇보다 귀찮아 하는;; 귀찮고 돈 아까워서 이제는 튕기는 여자까지 상대하긴 싫고 피곤하다는 거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남자 솔직히 저 사건만 아니었으면 머리로만 따지면 대선감일텐데 저당시 99% 사람들이 강용석 욕할때 우리형은 정말 머리좋은놈이라고 대단하다고 강용석 팬되서 엄청 칭찬했는데 그때는 먼 개소리야 라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머리좋은 사람들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탁월한 재능이 있다. 팩트를 바탕으로 토론을 장악하는 능력 줄어든 니트= 헤어트리트먼트 풀은물에 담궈주면 다시 늘어남
생선비린냄새=구울때 식초 조금 뿌려주면 맛도 좋아지고 냄새도 안남 물 찌든때 = 감자껍질로 쓱싹쓱싹 효과 굿 행주 (흰 천) = 달걀 껍데기와 삶기 딸기맛극대화 = 소금으로 씻기 깨진찻잔 = 우유와 같이 끓이기 배수구 냄새 = 녹차티백 or 커피그라인딩 셔츠찌든때 = 식빵으로 문질문질 후 세탁 시든꽃 = 마늘가루와 물을 함께 주면 활짝~ 최명기(부여다사랑병원장/정신과전문의/[무엇이 당신을 일하게 만드는가]저자) 정신과 의사는 사람들의 말을 많이 들어드려야 하는 직업이다. 레지던트 때는 환자의 무의식에 대해서 이해하고 환자의 무의식을 의식차원으로 이끌어내서 언어로 표현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느끼는 것은 무의식 이전에 이미 환자가 의식하고 있는 것을 편하게 말하게 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의식차원의 소재를 환자가 마음 편하게 이야기하고, 의사에게 이야기를 한 후 잘 얘기했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것도 어렵다는 것을 시간이 갈수록 깨닫게 된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말하기 편한 사람이 있고, 말하기 불편한 사람이 있다. 환자가 정신과 의사를 만나도 마찬가지다. 어떤 정신과의사에게는 왠지 내가 왜 이런 얘기까지 하고 있지 하는 느낌이 들게끔 편하게 말을 하게 되는데, 어떤 정신과 의사 앞에 서면 자꾸 사실을 감추게 된다. 처음에 레지던트 때는 환자들은 의사 앞에서 무조건 있는 그대로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아무리 의사 앞이더라도 환자들도 숨기고 싶은 것도 있고, 말하기 싫은 것도 당연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히 주위 사람들에게 표현하기 힘든 자신의 감정과 비밀스러운 측면을 말해준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내가 진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상대라고 환자들이 인정해주는 것이니까. 살다가 보면 어떤 사람에게 용기를 내서 마음을 드러냈다가 실망만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어려움을 말하고 위로를 받고 싶었는데, 오히려 왜 그 따위로 일을 처리하냐고 야단을 맞게 된다면, 그 사람에게는 앞으로도 점점 진실을 감추게 될 것이다. 학내에서 따돌림을 받거나, 같은 학교 학생들에게 구타를 당하는 경우, 부모가 나중에 알고서 아이에게 왜 이제서야 이야기를 하느냐고 말하는 수가 있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과거의 경험을 비추었을 때 부모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을 때,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애정과 관심이 아닌, 부모가 원하는 형태의 애정과 관심만이 돌아온다는 것을 알기에 감추게 되는 것이다. 의사들은 중고등학교, 의과대학 동안에 지적인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노력하는 타입인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환자들의 상황을 질환이라는 과학적, 이성적 측면에서만 접근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환자들이 자세한 설명, 지식의 전달에 못지 않게 원하는 것이 감성적인 공감이다. 얼마나 아픈지, 얼마나 슬픈지, 얼마나 걱정이 되는 지에 대해 사소하더라도 적절하게 감정적인 표현을 해주면 환자들에게는 많은 위안이 된다. 의사들뿐 아니라, 많은 성공한 사람들이 취약한 것이 이러한 감정적인 공감이다. 사실 진실을 말하고, 듣고, 받아들이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이러한 감정적인 공감이다. 우리는 진실을 말해달라고 자식에게, 부모에게, 직장상사에게, 부하직원에게, 사회에, 대통령에게, 교수님께 요구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토록 남의 진실을 듣기를 원하건만, 상대방이 말한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이 취약하다. 남의 진실을 들은 것에 대한 답례로 나의 진실을 말하는 경우도 많이 없다. 우리는 남의 진실을 수집하고 착취하려고 하지만, 나의 진실을 드러내는데는 조심스럽다. 감정이 섞인 인생의 진실은 일방적으로 나에게만 유리하게 수집할 수가 없다. 나의 진실을 줄 때, 타인도 그에 버금가는 그의 진실을 내게 준다.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가에 대한 좋은 예가 일본 영화 [사토라레]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의 속마음이 그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사람들은 사토라레가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진실을 접하게 되었을 때 당황한다. 자신이 느낀 것을 마음대로 전파하는 능력을 가진 사토라레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서 엄청난 사람과 자원이 동원된다. 어슐러 K. 르귄의 소설 [어둠의 왼손]에 보면, 우주의 인류가 나중에 진화를 해서, 서로가 말로 대화하지 않고 마음으로 대화를 하는 단계에 진입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우리는 지금 결혼을 하면 서로에게 거짓을 말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한다. 미래사회에서는 결혼을 하게 되면 부부끼리는 서로의 마음을 그대로 전달하게 절차를 밟으면 되는 것이다. 내 마음 속 생각을 상대방이 알게 되니까 거짓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가 신뢰하는 커뮤니티에 들어가게 되면 그 때는 커뮤니티의 구성원은 말을 통하지 않고 마음으로 서로 대화를 하게 된다. 거짓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터넷이 의사소통과정을 촉진시켜 생산성 증가를 비약적으로 가져왔다고 한다. 만약에 모든 인류가 진실만을 서로 말하고, 진실만을 서로 듣게 된다면, 그래서 거짓이 없는 세상이 온다면 이 세상의 죄악과 범죄 중 많은 부분이 사라질 것이다. 단 내가 듣고 싶지 않고, 내가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면 말이다. 과거에 임금님귀가 당나귀라는 것을 알게 된 이발사가 비밀을 끝까지 간직하지 못하고 입 밖에 내는 것을 어렸을 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역사를 배우면서 비밀이 탄로가 나서 모반이 미리 알려져서 반란이 실패하는 것도 어렸을 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사람들에게는 진실을 누군가에게는 말하고 싶은 충동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이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모든 거짓은 그다지 오래 가지 못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밝혀지는 이전 정권의 비리도 그러하다. 당사자들은 서로 함구하면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이 퍼지고 퍼지다가 보면 영원한 비밀이라는 것이 없게 되고, 소문이 나게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타인에게 진실을 말하고, 타인의 진실을 들어야지만 숨기고 싶은 나를 드러내고, 피하고 싶은 나를 받아들일 수 있다.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누구나 숨기고 싶은 상처가 있다. 젊었을 때 한 때 거식증에 걸린 여성은 그 누구에게도 그 상처를 드러내고 싶지 않다. 매일 맞고 사는 여인은 자식에게도 자신이 구타당하는 사실을 감추고 싶다. 알코올중독인 아버지를 둔 아들은 결혼하기 전 그 사실에 대해서 배우자에게 드러내야 할 지 감추어야 할 지 고민이다. 인생을 바꾸기 위해서는 이러한 비밀을 어떤 형태로던 남에게 이야기하고,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대상을 선택해서 도움을 청해야 한다. 정신과 의사를 하다가 보니 나도 모르고 환자도 모르는 무의식의 세계를 탐색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환자에게 용기를 주면서 숨기고 싶은 자신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자신은 알아채지 못하지만 남들의 눈에는 훤히 보이는 나쁜 태도도 있다. 자신이 게으름 피우는 것은 모르면서 항상 남들이 너무 자신을 가혹하게 대한다고 투덜댄다. 일이 잘못되면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 사람도 있다. 항상 거드름을 피우면서도 자신이 잘난체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있다. 사소한 일에도 화만 내면서 자신은 굉장히 착한 사람으로 인식하는 이들도 있다. 그 사람이 남들에게 어떻게 비추어지는지 진실되게 이야기하면 "뭐 이 따위 사람이 다 있어." 하면서 무시한다. 하지만 자신이 남에게 어떻게 비추어지는지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의 대인관계는 악순환을 계속한다. 상대방이 어떤 태도를 보이건 일관되게 긍정적인 반응을 해줌으로써 그에게 새로운 대인관계를 경험하게 해주는 것도 정신과 의사의 중요한 역활 중 하나다. 이렇게 숨기고 싶은 나, 피하고 싶은 나와 관련된 정신과 용어가 있다. 조하리의 창 (Johari Window) 이라는 용어가 그것이다. Joseph Luft 와 Harry Ingham 가 1969년에 발표했는데 이름의 앞 부분을 따서 Johari 라고 한 것이다. Johari Window 는 다음 네 가지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1 분면: 공개자아 (나도 알고 남도 안다.) 2 분면: 눈 먼 자아 (나는 모르지만 남은 안다.) 3 분면: 은폐자아 (나는 알지만 남은 모른다.) 4 분면: 미지자아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른다.) 남에게 감추고 싶은 어렸을 적 상처는 3분면에 해당이 된다. 남들에게는 숨기고 싶은 가족의 비밀도 3분면에 해당이 된다. 나는 알지만 남은 몰랐으면 한다. 은폐하고 싶은 마음 속 한 부분이다. 반면에 자신은 모르지만 남들에게 보이는 측면은 2분면 눈 먼 자아에 해당이 된다. 대기업에서 인터뷰를 할 때 잘 쓰는 질문이 있다. 남들이 자신에 대해서 잘못알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말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지원자는 사실 자신은 마음속으로 부드러운데 남들은 강한 사람으로 안다고 한다. 어떤 지원자는 자신이 겉으로 보면 유약해보이지만 강인해 보이는 구석이 있다고 한다. 즉 남들에게 지속적으로 지적을 받아도 자기 자신만 인정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눈 먼 자아에 해당이 된다. 은폐자아, 눈 먼 자아에 대해서 자각이 늘어날 때 자신의 삶을 자신이 통제하게 된다. 운명에 휘말린다는 절망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면서 현재 자신도 모르고 남들도 모르는 미지의 능력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한 미지의 능력을 통해서 내가 상상치도 못한 넓은 인생의 바다를 항해하게 된다. 그런데 은폐 자아와 눈먼 자아를 깨닫기 위해서는 피드백이 중요하다. 피드백을 통해서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 자기 이해와 자기 수용은 궁극적으로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고, 자신을 사회에 주장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개인의 성장이 이루어진다. 정신과에서는 자기를 수용하고, 자기를 이해하고, 자기를 드러 내고, 자기를 주장하는 것을 목표로 집단치료를 행하기도 한다. 집단치료에서 가장 흔히 접하게 되는 개념으로 공적존중감과 자아존중감이 있다. 공적존중감은 집단이 그 사람에 대해서 얼마나 가치있다고 인정해주는지와 관련된다. 자아존중감은 내가 나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지와 관련이 된다. 집단치료를 할 때 자기 자신은 잘났다고 생각하고 자기 멋대로 하려고 하는데, 다른 집단 참가자들은 그 사람에 대해서 아주 낮게 평가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자아존중감이 공적존중감에 비해서 과도하게 높은 경우다. 따라서 자신이라는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 같이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거나 아니면 그 집단을 떠나게 된다. 특히나 치료집단에서의 그 인간의 가치는 세상의 가치와는 약간 다르다. 예를 들어서 의사, 변호사라고 하면 실제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한 수 접고 들어간다. 환자나 의뢰인은 의사나 변호사에게 잘 보여야 하기 때문에 그렇고, 증권회사 직원이나 세일즈를 하는 사람들은 주요고객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게 대접만 받고 살던 이들은 치료집단에 들어와서도 사람들이 자신을 당연히 특별대접해주기 바란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많이 어색해진다. 사실은 이러한 어색함이 치료집단의 가장 커다란 힘 중 하나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객관적으로 괜찮은 사람인데 자기 자신은 못났다고 생각을 한다. 집단원들이 칭찬을 하면 할수록 그사람은 더욱 겸손해진다. 예를 들어서 결혼이 늦은 평범한 여자 회사원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녀는 집단원들 중 좋은 사회적 배경을 지닌 이들에게 주눅이 들어있다. 하지만 남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건 귀기울여 주고, 누군가 슬픈 이야기를 할 때 참 안 되었다고 맞장구도 쳐준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보잘 것 없이 여기지만, 집단에서는 점점 중요한 사람이 된다. 이런 경우는 공적존중감이 자아존중감보다 더 높은 경우다. 이 여성은 나 자신이 생각보다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자아존중감을 끌어 올려지면서 공적존중감과 균형을 맞추게 된다. 얼마 전에 패션 디자이너 지망생들이 참가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봤다. 문외한이 내가 보기에도 부적절한 디자인을 한 이들이 왜 자신이 떨어졌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심사위원을 원망하는 대목이 있었다. 자아존중감이 공적존중감을 완전히 넘어선 예인 것 같이 보였다. 자기 자신의 개성과 열정을 심사위원들이 이해 못한다는 것이다. 심사위원들이 나름대로 최선의 충고를 하고, 격려를 한 후에 탈락을 결정하자, 어차피 탈락시킬건데 왜 그렇게 좋은 말을 해줬는지 이해가 안간다고 도리어 화를 내는 참가자도 있었다. 언젠가부터 자기가 진정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서 꾸준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 다소 무책임하듯이 느껴진 때가 있었다. 자신이 잘하는 것이 반복적인 육체적 노동을 실수 없이 하는 것인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그 사람은 자신의 재능을 살리기 위해서 공장에 들어가서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일해야 하는 것인가? 세상에는 내가 잘하지만 지겨운 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 보면 젊은이들이 재미 있어 하는 일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주관적인 판단이 중요한 부분이다. 예술, 맛, 패션, 노래 등은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았을 때, 즉 공적존중감이 자아존중감보다 현저히 낮은 경우에 부정하기가 더 쉽다. 내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고루한 기성관념에 의해서 자신이 피해를 당한다고 생각하면서 꿈만 쫓고 사는 이들이 있다. 우리 사회의 한 쪽에는 이렇게 과도한 주관성에 몰두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그 반대쪽에는 공적존중감을 획득하는데 목을 메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모든 관심은 1억 모으기, 3억 모으기, 10억 모으기에 가 있다. 의학전문대학원, 법학전문대학원에 가기 위해서 고시생처럼 살아간다.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서 대학생활도 학점따기, 영어실력쌓기에 몰두한다. 우리 사회가 조금만 더 균형잡힌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공부 못하고 돈이 없으면 인정받지 못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그러한 주류에서 밀려난 이들은 과도한 개성추구에 몰입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한 상황을 다양성, 창조성이라고 포장하는 것은 아닐까? 주류의 선두에 있는 이들도 세상의 인정과 상관없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성찰을 하고, 비주류에 속한 이들도 세상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존재영역을 확보하기 위해서 다시 한번 노력해야 한다. ※ 2011년 1월 제가 허원미디어에서 출간한 [마음이 경영을 만나다] 中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본 내용은 <지금여기> 2003년 5/6월호 114페이지에 실린 세포 생물학자 브루스 립톤의 글을 정혜숙 선생 님께서 번역하신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요약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과오가 생길 수 있음을 미리 말씀드 립니다.
------------------------------------------------------------------------------------------------------------------------------------------- “생각이 유전자를 변화시킨다”는 말은 의학적으로 보면 너무나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거의 혁명적인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현대의학에서는 “DNA 중심 교리”라 하여 인간에 있어서 모든 것, 즉 생리작용, 대사작용, 심지어는 성격이나 생각하는 것까지 모두가 세포의 핵 속에 들어 있는 DNA가 모든 것을 알아서 지령한다는 교리가 지배하고 있는 판국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비물질적인 생각이라는 것 이 DNA를 조절한다고 하니 과히 혁명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1543년 과학 혁명 개시 직후 “과학의 목적은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것이다”라고 현대과학의 사명을 정의한 바 있습니다. 뉴턴 물리학의 등장 이후 우주는 부분들이 모여진 하나의 물질로 규정하게 되었고 따라서 오로지 물질만이 중요하게 취급되었고 결과적으로 현대과학은 물질주의 과학이 되었습니다. 현대의학도 이러한 물질주의의 개념 아래서 발전하였습니다. 그래서 인체는 장기로 분석되었고, 장기는 조직으로, 조직은 세포로, 세포는 분자로 분석되었습니다. 만약 분석된 장기, 조직, 세포 혹은 분자(유전자 등)에 이상이 발견되면 바로 그 고장 난 부분만을 가려내어 교정하거나, 제조된 물질(약품, 제조된 유 전자, 인공장기 등)을 이용하여 대체하였습니다. 현대의학은 오랫동안 인간을 조절하는 인자 중에서 환경인자가 더 중요한지 아니면 유전인자가 더 중요한 지를 놓고 시계추처럼 그 주장이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러나 1953년 왓슨과 크릭에 의해서 DNA가 발견됨 으로써 모든 쟁점은 사라지고 DNA가 최우선이라는 견해를 갖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DNA의 유전자에 는 인간이 수정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한 인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들이 이미 프로그램화 되어 있으며, 그러므로 필요에 의하여 DNA에 있는 이미 프로그램화 된 정보를 RNA가 복사해 내고, 이는 다시 단백질 합성으로 이어지며, 이 단백질에 의해서 종국적으로 인체의 모든 대사현상, 생리현상 및 생각 등을 유도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이미 DNA에 프로그램으로 저장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DNA 중심 교리”라는 것이며 유전자 결정론의 본체입니다. 여기서 “교리”란 신성불가침한 것이어서 절대로 파기될 수 없는 개념이란 뜻입니다. 일이 이렇게 진행되는 바에야 임신한 산모가 굳이 좋은 영양분을 먹을 필요도 없겠고, 더욱이나 태교(胎敎) 같은 것은 전혀 필요도 없겠습니다. 유전자가 다 알아서 해줄 테니까 말입니다. DNA 중심 교리가 인간게놈 프로젝트를 유도하였습니다. 인간게놈 프로젝트는 실로 원대한 꿈을 안고 출발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부인이 의사에게 와서 불행을 호소한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러면 의사는 유전자 지도에서 “행복 유전자”를 찾아 유전공학적으로 “행복 유전자”를 부인에게 주입하면서, “자 이제는 평생을 행복하게 지내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게놈 프로젝트입니다. 이 얼마나 신기루 같은 꿈입니까? 12년에 걸친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결과가 어떻게 판결 났는가는 유전학 분야의 노벨 수상자인 데이빗 볼티모어의 이야기를 들으면 실감이 나겠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12년간의 인간게놈 프로젝트에도 불구하고 유전자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아직도 모르고 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이렇게 힘없이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생물학자 및 의사들은 아직도 “DNA 중심 교리”라는 허황된 꿈을 버리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세포는 자신의 DNA가 들어있는 핵을 제거하여도 2달 이상을 죽지 않고 살아갑니다. 이것은 유전자 없이도 세포는 모든 삶의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사실입니다. 즉, 생리를 조절하는 것은 DNA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뜻입니다. 핵이 없는 세포, 즉 DNA가 없는 세포가 2달이나 죽지 않고 살아가는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이 세포는 수많은 단백질들이 마치 시계의 톱니같이 서로 물려서 돌아갑니다. 단백질 A는 단백질 B를 움직이고, 단백질 B는 단백질 C를 움직이며 ……..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핵이 없는 세포를 단순화 시키면 수많은 단백질의 세트로 이루어져 있는데 평소에는 쉬고 있다가 신호가 주어지면 즉시 행동을 개시합니다. 그러므로 신호가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가 관건이 되겠습니다. 전통과학에서는 분자만이 신호가 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양자물리학이 출현한 이후에는 에너지도 그 신호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에너지가 분자보다 신호로서 그 역할이 수 백배나 더 활성적이라는 것도 알려졌습니다. 여기서 에너지란 무엇일까요? 우리의 생각도 에너지이고, 느끼는 감정도 에너지입니다. 따라서 생각이나 감정도 신호로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인식의 전환입니다. 다음은 신호가 핵이 없는 세포를 어떻게 조절하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신호가 접수되는 곳은 세포막입니다. 그래서 세포막은 스윗치 센터(수용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포막에는 수많은 스윗치가 있지만 신호에 의해서 일단 스윗치가 작동만 하면 그 다음의 대사과정은 스윗치의 종류에 관계없이 동일합니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스윗치를 작동할 수 있는 신호의 종류에는 분자 뿐만 아니라 감정의 에너지를 포함하여 전자기적 에너지도 포함됩니다. 유전자가 아닙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삶에 대한 한 사람의 태도는 세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의 세포는 항상 웃게 될 것이고, 세상을 부정적으로 사는 사람의 세포는 항상 울게 될 것입니다. 전통과학에서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였던 DNA는 도대체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는가? 그것은 단지 세포를 구성하는 수많은 단백질을 생성하는 일을 합니다. 이들 단백질은 항상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낡아버리면 새로운 단백질로 교체하여야 하는데 바로 이때 DNA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DNA가 어떤 단백질이 필요한지 어떻게 알아서 새로운 단백질을 만들게 되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핵의 구조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핵은 50%가 DNA이고 나머지 50%는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는데 단백질은 DNA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 DNA를 둘러싸고 있는 단백질을 조절단백질이라고 부릅니다. 이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DNA 속에는 유전자가 숨어 있는데 DNA는 조절단백질에 의하여 둘러싸여 있으니까 유전자가 작동하려면 먼저 DNA를 둘러싸고 있는 조절단백질부터 제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DNA를 둘러싸고 있는 조절단백질을 제거하는 역할을 하는가? 물론 신호이겠지요. 다시 말하 면 신호가 DNA를 둘러싸는 조절단백질에 가서 붙으면 조절단백질 껍질이 벗겨지고 유전자 코드가 드러나게 됩니다. 이때 관여하는 신호에는 생리적 신호 이외에도 의식적 신호가 관여한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 습니다. 여기서도 삶에 대한 한 사람의 의식이 유전자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유전자를 작동하기 위해서는 유전자를 둘러싸고 있는 조절단백질이 먼저 벗겨져야 하고, 조절단백질을 벗기기 위해서는 신호가 필요한데 이때 신호에는 분자적 신호도 있지만 의식이 중요하게 관여합니다. 따라서 유전자가 모든 것을 조절한다는 소위 말하는 유전자 중심설이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나를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약 11년 전쯤에 하이텔에서 히트친 단편일기...
< 1 > "처음 뵙겠습니다. 이 시대 마지막 로맨티스트입니다." 친구가 그러더군요. 자기 아는 선배중에 참 신기한 사람이 있다고. 전 그냥 호기심에 한번 보고싶다고 했는데, 그가 제게 처음 한 말이 바로 "마지막 로맨티스트"란 말이었어요. 정말 이상한 사람도 다 있다고 생각했죠. 다짜고짜 로맨티스트란...아무래도 왕자병에 단단히 걸려 있던지, 아니면 자기멋에 사는 시덥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참 아름답지 않습니까? 저 별들.. 저 별빛은 아마 10만년, 아니 더 이전에 내려온 빛일지도 모르는데.. 그 빛을 보고 있는 우리는 그만큼의 시간을 보고 있는 셈이 될테니까요..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대개 아름답게 마련이죠." 저건 또 무슨 책에서 읽은 대사인지. 전 시큰둥하게 대답했어요. "아..네. 뭐.....그렇네요." "당신도 아름답습니다. 저 별빛보다 더." 뜨아... 그 말을 들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어떻게 이런 느끼한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어요. 솔직히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그것도 처음 본 사람한테. 하지만 나중에 알았어요.. 그의 말이 진심이라는 걸. < 2 >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게 연락이 왔어요. 다시 만나자구요. 그 말도 얼마나 화려하게 말을 하던지.. 전 그렇게 끌리지는 않았지만, 밥을 먹고, 잠시 길을 거닐며 그는 제게 이야기 했어요. "진정한 로맨티스트는 함부로 자신의 로맨스를 만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이라면 제 로맨스를 받아주실 수 있을 것 같네요. 지금 제 귓가를 스치고 간 바람도 그러던걸요. 이 여자, 꼭 잡으라고.." 아무래도..솔직히.. 이 남자 제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이런 사람 직접 보셨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느끼하겠어요. "저기요.. 원래 말을 그렇게 하세요?" "네. 왜냐하면 전 로맨티스트거든요." "다른 사람들이..뭐라고 안그래요?" "뭐라고 그래도 상관 없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만 괜찮다면." 으..영화에서 이런 대사 하는 거 보면 참 멋지고 그랬는데. 실제로 들으니까 진짜루 닭살 쫘악~~이었어요. 한참을 그러고 가다가, 그가 제게 묻더군요. 어떤 영화를 보고 싶냐구.. 그래서 그냥 생각나는대로 이야기 했더니, 씨익 웃으면서 극장으로 데리고 가더군요. 전 같이 가면서 걱정이 됐어요. 그 영화가 하도 인기라서 예매를 하지 않으면 보기 힘들다고 친구가 그랬거든요. 하지만 그는 제가 보고 싶은 영화를 어떻게 알았는지 미리 예매를 해놨더라구요. 자리도 참 좋았어요. 극장이 좁긴 했지만 앞자리가 비어 있어서 머리 때문에 화면이 안보이구 그런 일은 없었거든요. 그렇게 영화를 보다가 그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그가 벗어 놓은 옷이 떨어져서 주워올리다가 우연히 주머니를 보게 되었는 데...뭐가 잔뜩 들어있더군요. 호기심에 살짝 봤는데.. 세상에. 그날 개봉된 영화가 종류별로 전부 예매되어 있었어요. 그것도 4장씩.. 우리 두사람 자리하고 앞자리까지 전부 예매를 해 놓은거였어요. 나중에 집에 오면서 그에게 물어봤어요. 어떻게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예매할 수 있었냐구. 알면서 물어본 건데.. 그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운이 좋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요.." 그 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사람 진짜 로맨티스트일지도 모르겠다고. < 3 > 그 날은 제가 너무 바빠서 오랜만에 만난 날이 었어요. 좀 어색한 느낌도 들어서 별로 말도 안하구 그냥 밥이나 같이 먹고 헤어지게 되었는 데, 그가 그러는거예요. "지금 뭐가 제일 하고 싶어요?" "네? 저..글쎄요..." "아무거나 대답해 보세요." "그냥 생각이 나는 건..놀이기구를 타고 싶긴한데.. 너무 늦어서 못가겠죠. 11시 다 되어가니까." "잠깐만 실례할께요." "네? 어...어머!" 그는 갑자기 저를 번쩍 안더니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어요. 모든 사람들이 저희를 쳐다보았고, 저는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어요. 그는 힘이 드는지 씩씩거리면서도 계속 뛰었어요. "저기..이제 됐으니까 내려주세요~" "재미있으세요?" "네, 고마워요. 그러니까..내려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는 땀이 송글송글 맺힌 얼굴로 저를 내려주고는 씨익 웃었어요. 갑자기 그러는 법이 어디 있냐구 핀잔이라도 줄려고 했는데, 그의 얼굴을 보니 차마 그 말도 못하겠던걸요. 그리고 휴지를 꺼내 그의 얼굴을 닦아주며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말이에요. < 4 > 제 생일날, 처음으로 약속시간에 늦은 그는 얼굴이 말이 아니었어요. 보기 좋던 그의 뺨이 움푹 들어가있었고, 손은 상처투성이었어요. "어머, 왜..왜 이렇게 됐어요?" "좀..그럴 일이 있었습니다. 괜찮으면 어디 좀 같이 가실까요?" "네?..네." 그러더니, 그는 저의 손을 잡고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가는거예요. 전 이해할 수 없었죠. 왜 이 사람이 이러는지..워낙 다른 사람하고 다르기는 했지만, 그 날은 정말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차를 타고 한참을 가서 내린 곳은, 강원도에 있는 이름 모를 어느 산이었어요. 전 아무 말 없이 제 손을 잡고 앞으로 가는 그의 등을 보며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왠지 그냥 따라 가야 할 것 같아 힘든 걸음으로 그의 뒤를 쫓아갔어요. 날은 벌써 어두워져서 아무것도 안보이는데, 그는 많이 와 본 길인듯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어요. 그리고 고개를 돌아 산 중턱에 닿자, 그는 제게 이야기했어요. "이제 다 왔어요." "여긴 왜 온거에요?" "그 이유는..내일 아침 해가 뜨면 알 수 있을겁니다." "어머. 잠깐요. 그럼 오늘 여기서 밤을 새야 되요?" "네." "저..안되겠어요. 집에 가야 해요." "절 믿어주시고..여기 앉아서 아침 해를 바라봐 주실 수 없으세요? 제발...부탁드릴께요." 솔직히..로맨티스트인 이 사람이 제 생일에 무얼 선물할지 내심 기대했었는데, 이건 실망도 이만 저만 아니었어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산 속에서 같이 밤을 새자니. 하지만 차도 끊겼고.. 설마 이 사람이 나쁜 짓 할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고..어쩔 수 있나요. 밤을 새는 수 밖에. 그리고 바위 위에 오도카니 앉아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전 그의 어깨를 베고 잠이 들었어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함께 그가 제 귀에 살며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어요.. "시간 됐어요. 이제 일어나서 앞을 보세요." 전 부시시 눈을 뜨고 앞을 보았어요. 그리고 전.....입을 다물 수 없었어요. 아침 해가 은은히 비추는 산 중턱에는, 전부 장미로 가득했어요. 눈앞에 보이는 건 모두 장미.. 그것도 빨갛게 핀 장미가 아침 햇빛을 담은 이슬을 머금고 있는 모습이라는 건.. 상상 할 수있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보다도 더 아름다운 모습이었어요. "세..세상에....이 장미들이 어떻게 여기에..." "우리나라에 단 한 곳뿐인 야생장미 집단서식처에요. 전에 무슨 책에선가 본 기억이 있어서.. 당신에게 꼭 보여주고 싶어서 데리고 왔는데.. 꺾여진 100송이 장미보다 피어있는 1000송이 장미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참, 벌써 하루 늦 어버렸지만, 생일 축하해요." 여길 찾으려고 이 근처 산을 다 헤메느라고 얼굴이랑 손이랑 엉망이 되어버렸다며 쑥스럽게 웃는 그를 보며..이젠 그의 말이 느끼하지 않았어요. 그냥 좋았어요. 그리고 저도 느끼한 말 한마디 했답니다.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사랑하게 만들어 버리는군요, 당신이란 사람은.." < 5 > 영원한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이고 슬픈 사랑만이 영원할 수 있다면서... 이제야 진정한 로맨티스트가 될 수 있겠다고 그는 파리해진 얼굴로 이야기했어요. 50년을 사랑해 주었으면서도 더 사랑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먼저 죽게 되어 미안하다며 주름진 제 손을 쓰다듬으며 미안하다고.... 오랜 세월 함께 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하며 당신보다 먼저 그 곳에 가서 장미밭을 만들고 있을테니 나중에.... 천천히 오라며.... 그는 눈을 감았어요. 까맣게 검버섯이 피어있는 그의 얼굴에서 그 날 아침, 장미보다 더 아름답던 당신의 얼굴을 떠올리며... 사랑합니다. 나의 마지막 로맨티스트. 안녕.. |
HS SungStudent @ Penn dental Archives
Novembe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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